정미 일본주에서 정미라는 것은 쌀을 깎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술을 만들기 전 원료미의 겉부분을 깎아내고 중심부를 살려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일본주를 접하면서 자주 듣는 말인 긴조, 다이긴조 와 같은 표현 또한 쌀을 얼마나 깎아내느냐를…
정미 일본주에서 정미라는 것은 쌀을 깎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술을 만들기 전 원료미의 겉부분을 깎아내고 중심부를 살려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일본주를 접하면서 자주 듣는 말인 긴조, 다이긴조 와 같은 표현 또한 쌀을 얼마나 깎아내느냐를 의미한다. 그리고 흔히 좀 더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대부분의 일본주는 제조 과정에서 쌀을 깎아내는 공정을 거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아까운 쌀을 굳이 깎아내는 것인가? 쌀을 깎아냄으로써 어떤 이점이 있는 것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쌀알 한 톨의 구성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단 처음 수확된 쌀에는 왕겨 라고 불리는 껍질이 존재한다. 이 껍질을 제거하는 과정은 술을 만들지 않더라도 가장 처음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껍질을 벗긴 쌀은 밥이 되거나 술이 되거나 두 가지 운명을 맞이한다. 벗겨진 쌀알을 자세히 살펴보면 겉부분과 살짝 파여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살짝 파여 있는 부분은 배아 라고 불리는, 벼가 성장하는 부분으로 단백질·지질·무기질·비타민 등의 성분이 풍부하다. 겉부분 또한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밥을 해 먹는다면 이 부분들은 인간에게 필수적이고 풍부한 영양소를 제공한다. 가운데를 살펴보자. 흰 알갱이 같은 부분이 존재한다. 이 부분은 배유 라는 부위로, 주성분은 전분이며 누룩 효소에 의해 당으로 분해되어 알코올 발효의 원료가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풍부한 영양소를 가진 부분을 왜 굳이 깎아내는지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실제 발효 과정에서도 위의 영양소는 사케의 풍미를 결정짓는 요인 중 하나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말은 다소 통제하기 힘든 복합적인 향을 발생시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쌀 외층의 불포화 지방산은 효모가 만드는 바나나 향 계열의 긴조 향 성분인 초산이소아밀 의 생성을 억제할 수 있다. 또한 지질이 산화·분해되면 헥사날 등이 생겨 겨 냄새나 오래된 쌀 같은 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칼륨·마그네슘·인 등은 효모 활동에 필요한 성분이지만, 지나치게 많으면 발효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술의 성분 균형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철분은 누룩균이 만든 물질과 결합해 황갈색의 페리크리신 을 형성하며, 사케를 붉거나 갈색으로 변색시키고 거친 맛을 유발할 수 있다 . 쌀의 전분은 아밀로스 와 아밀로펙틴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증자 후 누룩이 생산한 효소에 의해 포도당 등 발효 가능한 당으로 분해된다. 이 당은 효모의 알코올 발효에 이용되어 사케의 알코올, 향기 성분, 맛의 기초를 형성한다. 물론 사케의 향미가 정미와 발효만으로 모두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원료 쌀의 품종, 물, 누룩 제조, 효모, 온도 관리, 여과, 화입, 숙성 등의 요소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정리하자면, 정미는 쌀의 외층에 많이 분포하는 단백질, 지질, 무기질 등을 조절하여 잡미나 이취의 가능성을 줄이고, 발효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생화학적 변수를 최소화하는 공정이다. 이를 통해 양조자는 효모와 누룩이 만들어 내는 긍정적인 향과 맛이 보다 깨끗하게 표현되도록 하며, 이후의 발효 및 후처리 공정에서 사케의 향미를 의도한 방향으로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다. 이처럼 정미를 통해 사케의 품질을 끌어올리려는 시도는 꾸준히 발전해 왔다. 이는 양조를 위한 쌀의 품종 개량 단계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으며, 일반 식용 쌀과 달리 양조용 쌀, 즉 주조호적미는 꾸준한 품종 개량을 거치며 배유 내부에 심백 이라는 불투명한 부분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는 독립된 기관이 아니라 전분 입자가 성기게 배열되어 공간이 많은 구조를 가지며, 누룩균의 균사가 내부로 자라기 쉬워 누룩 제조에 유리하게 개량되었다. 따라서 현대에는 이러한 개량에 발맞추어 매우 높은 수준의 정미가 가능해졌으며, 이 심백만을 최소한으로 남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물론 쌀을 깎는 게 무조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닌데, 기본적으로 깎는 과정에서 쌀알이 작아지고 약해진다. 특히 심백이 큰 주조용 쌀은 고도로 정미하면 쌀이 갈라지거나 부서질 위험이 커지게 된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쌀을 깎음으로써 비용이 상승하게 된다. 일반적인 720mL 사케 1병, 알코올 15% 전후를 기준으로 두고 정미하지 않은 쌀을 그대로 사용하면 약 300g이 필요하다. 만약 다이긴조급 사케를 만든다고 가정하면 대략 2배 , 즉 600g가량의 쌀을 소모하게 된다. 만약 여기서 쌀을 더 깎아내면 당연히 더 많은 쌀을 필요로 하게 된다. 쌀을 깎는 것이 무조건 맛과 향을 좋게 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쌀을 깎으면 깎을수록 사케의 향과 풍미는 단조로워진다. 앞서 설명했듯, 발효 과정에서 향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의외로 쌀 겉면의 불순물들이며, 발효 이후 특별한 공정 없이 단순히 정미율만 높은 술은 꽤 단조로워질 수밖에 없다. 발전사 정미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현미나 약하게 깎은 쌀을 술의 원료로 사용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누룩을 만드는 쌀에는 현미를, 발효에 넣는 덧쌀에는 백미를 사용하는 가타하쿠(片白)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2025 한 행사에서 재현된 카타하쿠 이후 나라의 사원 양조장에서 누룩쌀과 덧쌀 모두에 백미를 사용하는 난토 모로하쿠(南都諸白) 방식이 등장했다. 이 방식은 에도 시대 초기에 이타미 지역, 즉 효고현 이타미시의 이타미 모로하쿠 로 발전했으며, 기존 술보다 산미가 적고 정제된 술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에도 시대의 대표적인 정미 방법은 절구와 공이를 이용한 발 디딜방아식 정미였다. 그런데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정미’라는 표현보다 쌀을 발로 밟아 찧는다는 뜻의 후미마이(踏米)라는 말도 사용되었다. 에도 전기의 양조 기술서인 『 도모슈조키(童蒙酒造記)』 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정미보합은 약 94~95%로 추정된다. 현미의 5~6% 정도만 제거한 셈으로, 오늘날의 식용 백미보다도 덜 깎은 수준이었다. 18세기 후반에는 나다 지역, 즉 효고현 고베시 동부 일대에서 롯코산의 급류를 이용한 수차 정미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일본 국세청의 전통 양조 조사에서는 1781~1789년 이후 나다에서 수차 정미가 사용되었으며, 약 80% 수준의 정미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한다. 수차는 여러 개의 공이를 동시에 움직일 수 있어 인력식 정미보다 훨씬 많은 쌀을 처리했다. 1888년 기록에는 한 수차 정미장에 200개가 넘는 절구가 설치된 사례도 남아 있다. 이러한 대량 정미 능력은 나다 양조업이 이타미를 제치고 일본의 대표적인 사케 생산지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메이지 시대에는 증기 기관과 서양식 기계가 도입되면서, 정미도 인력과 수력 중심에서 기계식으로 변화했다. 사타케의 공식 연혁에 따르면, 창업자 사타케 리이치는 1896년 일본 최초의 동력식 정미기인 4연식 절구형 정곡기 를 개발했다. 이후 연마재로 표면을 깎는 수직형 연삭식 정미기 가 개발되었다. 이 기술은 쌀을 여러 차례 순환시키며 조금씩 깎을 수 있어, 쌀알이 지나치게 깨지는 것을 줄이고 보다 높은 수준의 정미를 가능하게 했다. 1930년에는 사타케가 완성한 수직형 연삭식 정미기 C형 이 등장했다. 이 기계는 현대 사케 정미기의 기본 구조를 확립한 기계로 평가된다. 금강사를 굳혀 만든 원반형 연마 롤을 사용했으며, 기존 수차 정미가 대체로 70% 전후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정미보합 40%까지 가공할 수 있었다. 이 구조는 이후 회전 속도와 압력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현대식 정미기에도 계승되었다. 정미 기술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발전해 쌀을 극한까지 깎아내는 고도 정미가 가능해졌으며, 최근에는 쌀을 단순히 둥글게 만드는 방식에서 벗어나 쌀의 원래 형태를 유지하거나 납작하게 깎는 등, 최대한 많이 깎아내는 것을 넘어서 깎아내는 형태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정미의 형태 정미기는 기계의 작동 방식에 따라 크게 마찰식 정미, 연삭식 정미, 복합식 정미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마찰식 정미 마찰식 정미는 일반적인 식용 쌀에서도 사용되는 방식으로, 쌀알에 압력을 가해 쌀알끼리 서로 마찰하면서 겨층과 배아를 벗겨내는 방식이다. 높은 수준의 정미는 기대하기 힘들다. 연삭식 정미 금강사나 CBN 등의 연마재로 만든 롤에 쌀을 접촉시켜 표면을 조금씩 깎는 방식이다. 낮은 압력으로 쌀의 배유까지 정밀하게 깎을 수 있어 양조용 고도 정미에 적합하다. 현대 사케 양조에서는 일반적으로 수직형 연삭식 정미기가 사용된다. 복합식 정미 연삭식으로 쌀의 표면을 먼저 깎고, 마찰식으로 겨층과 배아를 정리하는 방식이다. 식용 쌀 가공에서는 널리 이용된다. 쌀알 형태에 따라서는 크게 구형 정미, 원형 정미, 편평 정미, 등후 정미로 나눌 수 있으며, 이는 정미 후 나온 쌀알의 형태에 따른 분류이다. 구형 정미(球形精米) 정미가 진행될수록 쌀의 돌출된 양 끝이 먼저 깎이면서 쌀알이 둥글어진다. 조작이 비교적 쉽지만, 쌀의 두께 방향에 존재하는 단백질을 충분히 제거하려면 쌀을 충분히 깎아내야 할 필요가 있다. 원형 정미(原形精米)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깎아내는 기법으로, 현미의 길이·너비·두께 비율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 작아지도록 깎아낸다. 심백이 크거나 눈 모양으로 형성된 일부 주조용 쌀은 지나치게 납작하게 깎으면 심백이 노출되어 깨질 수 있으나, 최근에는 고도 정미에서 원형 정미가 편평 정미보다 쌀이 덜 부서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평 정미(扁平精米) 쌀알의 앞뒤 면, 즉 두께 방향을 더 많이 깎는 방식이다. 단백질은 쌀 표면에 많이 분포하기 때문에 편평 정미를 하면 필요한 전분의 손실을 줄이면서 단백질을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즉, 동량의 쌀을 동일한 정미보합으로 가공할 때 더 많은 부분을 깎아낼 수 있다. 다만 편평하게 깎은 쌀은 얇아져 깨지기 쉽고, 일반적인 구형 정미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등후 정미(等厚精米) 쌀의 길이·너비·두께 비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쌀알의 모든 표면에서 동일한 절대 두께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쌀은 원래 길이에 비해 두께가 얇기 때문에 같은 두께를 제거하면 결과적으로 납작한 모양이 된다. 정미된 쌀알의 형태는 단백질·지질·무기질의 양, 흡수성, 증자 상태, 누룩 형성에 영향을 주고, 이는 곧 제품의 맛과 향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동량의 쌀을 동일한 정미보합으로 깎아도 단백질 함량이 다르다는 점도 한몫한다. 정미보합 정미보합(精米歩合)은 사케를 만들 때 쌀을 깎은 뒤 얼마나 남았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공식저으론 다음과 같이 계산한다 정미보합 = 정미 후 남은 백미의 무게 ÷ 정미 전 현미의 무게 × 100 즉 정미보합 60% 라는 것은 이 말은 쌀을 60% 깎았다는 뜻이 아니라, 60%가 남고 40%를 깎았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소비자가 접하는 형태는 다음과 같다 혼조조(本醸造) 정미보합 70% 이하 긴조(吟醸) 정미보합 60% 이하 다이긴조(大吟醸) 정미보합 50% 이하 물론 현대에 들어서 이 세가지 기준이 사케의 품질과 맛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미율 이 높은 사케가 품질이 보장되어 있는것은 사실이며 과거에 폐지된 사케 등급제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역사상 정미율이 가장 극단적인 사케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零響 -Crystal 0- 로 미야기현에 위치한 신자와양조점에서 선보인 사실성 정미보합 0%에 도달한 최초의 제품이기도 하다. 물론 법적으로 0% 표기는 이전에 생산된 零響 -Absolute 0- 가 가져갔으나 이보다 더 발전시킨 형태의 제품을 출시한것이 Crystal 0 이다 Crystal 0는 1% 미만 쌀의 약 0.85% 만 남긴 극단적인 정미율을 자랑한다. 현미 100kg을 깎아 실제로 술에 쓰는 쌀 중심부는 약 850g 뿐이라는 뜻이다. 이 정미 과정은 대략 7개월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현대에는 단순하게 정미율만이 아닌 다양한 시도를 통해 사케의 맛과 품질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높은 정미율이 가져다 주는 프리미엄은 여전히 시장에서 많은 수요가 있기에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 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