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조의 기원 사케의 기원, 즉 일본의 양조 역사 속에서 최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魏書 東夷傳)〉입니다. 이 책에는 고대 일본인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시고, 사람의 성품이 술을 즐긴다"라고 기록되어…
주조의 기원 사케의 기원, 즉 일본의 양조 역사 속에서 최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魏書 東夷傳)〉입니다. 이 책에는 고대 일본인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시고, 사람의 성품이 술을 즐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고대 일본 사회에 술을 마시는 풍습이 이미 널리 퍼져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기록만으로는 당시 사람들이 어떤 형태의 술을 마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대략적으로 '구치카미노사케(口噛みの酒)'라고 불리는, 곡물을 입으로 씹어 침으로 당화한 후 발효시킨 원시적인 형태의 술이 전해집니다. 이는 주로 종교적인 의례를 위해 신사의 무녀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사케 양조의 형태가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하리마 풍토기(播磨風土記)》입니다. 이 책은 나라 시대 지방의 국사(지방 행정관)에 의해 해당 지역의 지리, 전설, 산물 등을 기록한 것입니다. 나라 시대에 편찬되었으나, 내용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전승을 담고 있습니다. 《하리마 풍토기》에 기록된 시사와군 니와오토촌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대신 에게 바친 제물 곡식이 말라서 누룩곰팡이가 생겼다. 그래서 곧 그것으로 술을 빚게 하여 니와키 에게 바치고 잔치를 벌였다." 이 기록을 통해 누룩을 이용한 술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전문적으로 누룩을 만들어낸 것인지, 아니면 자연적인 생성에 의존한 것인지는 불명확합니다. 여기서 쌀밥에 곰팡이가 핀 것을 '기무타치(가무타치)'라고 불렀으며, 이를 오늘날 우리가 아는 누룩의 원시적인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제물이 된 곡식 또한 벼일 가능성이 크며, 이는 고대 일본에서 이미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술과 권력 술을 빚는 과정에는 막대한 양의 곡식이 필요합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일본에서 술이 본격적으로 빚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이미 수전(논) 벼농사가 도입되어 농업 사회로 완전히 변천한 뒤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벼농사를 중심으로 하던 작은 공동체들은 현재의 나라현 남부 일대에서 번성하였고, 이후 고대 일본의 왕정 국가인 야마토 정권의 지배하에 놓이게 됩니다. 중앙집권화된 고대 국가는 강력한 군사력과 정치력을 기반으로 지역을 통합하였으며, 농업의 발전은 이 고대 국가의 강력한 경제적 기반이 되어주었습니다. 또한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들은 수많은 문화와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들은 야마토 정권의 씨성제도(고대 신분제) 아래에서 수공업 생산 및 관리를 담당했습니다. 이는 농업과 수공업 생산의 중심이 민간에서 중앙화된 지배 집단으로 본격적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합니다. 즉, 민간에서 제각각 이루어지던 자연스러운 행위였던 술 생산이, 조정이 직접 관리하고 생산하는 '권력의 술'이 된 것입니다. 6세기 말 무렵부터는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로부터 전해진 율령체제를 본뜬 초기 관료제가 자리 잡았고, 다이카 개신을 통해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조업은 중앙에서 운영하는 관영 공방 아래에서 전문적으로 육성되었습니다. 조주사 우물 터 조정 내에서 쓰는 술은 궁중의 술 양조 전문 기관인 '조주사(造酒司)'에서 담당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술은 여전히 강력한 종교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에, 여러 신사에서도 술을 별도로 빚고 관리하는 직책이 존재했습니다. 고대 양조의 핵심은 술을 즐기거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일부 권력층이나 종교 적 제례를 위해 전문적인 양조 기술자가 직무로서 술을 빚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고대 법령을 통해 본 양조 체제 고대 법령 해설서인 《령집해(令集解)》는 헤이안 시대 초기에 쓰인 책으로, 약 200년 전에 만들어진 율령 및 개정 율령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어 나라 시대 당시 조정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조정은 술뿐만 아니라 대규모 공방을 운영하며 국가가 직접 물품을 생산하고 관리했습니다. '시나베(品部)'라 불리는 전문 장인 집단이 민간에서 관청으로 차출되어 봉사하였는데, 이들은 일반 농민과 구분되어 면세 혜택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각 호(戶)에서 일정 수만큼 차출되어 양성되었으며, 이들이 가진 전문 기술은 당시 백제나 고구려 계통의 도래인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조정 내의 조주 기술자들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이들을 총괄하는 '사케노카미(造酒正)'는 당시 정6위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태수나 차관급의 대우를 받는 고위직이었습니다. 사케노카미 아래에는 '사카베(酒部)'라 불리는 장인 약 60명이 있었으며, 이들은 야마토 지역 90가구, 가와치국 70가구 등 총 160가구 규모의 술 제조 담당 집단에서 차출되었습니다. 또한 셋쓰국에서는 25가구가 술을 접대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전해집니다. 이들은 모두 각 지역에서 전문적으로 술을 만들고 접대하던 가문들이었으며, 이러한 직책은 세습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장인들은 겨울뿐만 아니라 봄과 가을에도 술을 빚어, 1년에 세 번에 걸쳐 총 5,000석가량의 술을 생산했습니다. 이는 약 90만 리터(720ml 병 기준으로 약 125만 병)에 달하는 엄청난 양입니다. 당시 술은 천황과 귀족들에게 바쳐지던 고급 술과 하급 관리에게 배급되던 잡급주(雑級酒)로 나뉘었으며, 생산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방식으로 술을 빚었는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궁내성에는 술뿐만 아니라 된장, 간장 등의 발효 식품을 만드는 공방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볼 때, 당시의 양조 방식이 오늘날의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학계의 추측입니다. 《연희식(延喜式)》에 나타난 양조 데이터 다이고 천황 시기인 905년에 집필이 시작되어 법령 및 의례에 대한 기록을 전하고 있는 《연희식(延喜式)》에는 원시적인 술빚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등장합니다. 햇곡식을 신에게 바치는 제사인 '신상제(新嘗祭)'에 대한 내용에 따르면, '흰술(백주)'과 '검은술(흑주)' 두 종류의 술을 빚어 신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제사가 이루어지기 전 절구전(방앗간), 누룩실(누룩을 만드는 밀실), 술전(술을 빚는 양조 공간)이 각각 한 동씩 세워졌습니다. 술을 만드는 재료에 대해서도 매우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주(御酒 - 궁중에 올리는 술): 총재료는 약 38,400L(38.4kL) 규모였습니다. 어주 8두(약 144L)를 만들기 위해서는 쌀 1석(약 180L), 당화 재료인 얼 또는 누룩싹 약 72L, 물 약 162L가 필요했습니다. 어정주(御정酒 - 궁중 의례나 공적 용도의 술): 총재료는 약 3,500L 규모였습니다. 어정주 약 72L를 만들기 위해 쌀 약 180L, 얼 또는 누룩싹 약 72L, 물 약 108L가 쓰였습니다. 즉, 어주보다 물의 비율이 적어 상대적으로 더 진한 술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오늘날의 '겐슈(原酒)'와 비슷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스리소(醴酒): 총재료는 약 8,700L 규모였습니다. 스리소 약 180L를 만들기 위해 쌀 약 180L, 얼 또는 누룩싹 약 126L, 물 약 180L가 필요했습니다. 여기서는 당화 재료의 비율이 특히 높습니다. 스리소를 포함한 세 종류의 술에는 총 49,600L 규모의 재료가 쓰였고, 그 가운데 찹쌀도 약 2,700L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주(醴酒 - 단맛이 강한 의례용 술): 전체 재료가 약 650L 규모였습니다. 쌀 4승, 얼 2승, 술 3승을 합하면 정확히 9승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예주 약 16L를 만들기 위해 쌀 약 7.2L, 얼 또는 누룩싹 약 3.6L, 술 약 5.4L를 쓴 셈입니다. 물 대신 이미 만들어진 술을 넣었다는 점에서, 단맛과 농도를 높인 특수한 술(오늘날의 기조슈와 유사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만들기 위한 양조 도구도 대규모였습니다. 항아리 뚜껑 200개, 아궁이 100개, 시루 3개, 절구와 절굿공이, 키 20개, 물통 30개, 표주박 10개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조주사가 단순한 작은 궁중 부엌이 아니라, 상당한 규모를 갖춘 관영 주조 시설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일본 고대 누룩의 특징: 바라코지(흩은누룩) 이외에도 수많은 기록이 존재하는데, 당시 술을 빚기 위해 사용되던 누룩은 '얼' 또는 '누룩싹'으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얼'은 맥아(엿기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일본식 흩은누룩인 '바라코지(散麹)'를 의미합니다. 이는 중국이나 한국 등 대륙에서 쓰이는 누룩의 형태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대륙에서 사용되는 누룩은 흔히 '떡누룩(병곡)'이라 부르며, 곡물을 가루 내어 떡처럼 뭉쳐 만든 것입니다. 반면 바라코지는 떡누룩과 달리 쌀알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 만든 누룩으로, 황국균(황누룩곰팡이)이 번성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 등 대륙에도 바라코지와 같은 형태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곡물을 가공한 떡누룩 형태가 주류가 되었습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찐 쌀을 그대로 발효시킨 형태가 유독 주류로 정착하여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일본에서 독점적인 주류가 된 명확한 이유는 아직 학계에서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쌀알 위에 균을 틔우는 형태의 양조법이 대륙의 떡누룩 기술이 본격적으로 전해지기 전에 이미 고대 일본 내에서 제도화되고 정착했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추측해 봅니다. 참고자료 国税庁, 「日本の伝統的なこうじ菌を使った酒造り 調査報告書」. 国税庁, 「日本酒の歴史 ⑴ 日本酒造りの歴史」. 村井裕一郎, 「Past, Present, and Future of Koji and Seed Koji」, Journal of Sakeology , 2025. 酒造の歴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