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제의 역사 일본에서는 오랜 기간 청주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준마이, 긴조, 다이긴조와 같은 특정명칭주뿐 아니라, 개성 있는 고품질 사케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케를 즐기는 많은 분들은 이러한 현대의…
등급제의 역사 일본에서는 오랜 기간 청주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준마이, 긴조, 다이긴조와 같은 특정명칭주뿐 아니라, 개성 있는 고품질 사케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케를 즐기는 많은 분들은 이러한 현대의 분류 체계에 어느 정도 익숙하실 겁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등급과 분류의 체계는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오늘날에는 어떤 유산을 남겼을까요? 오래전 일본에서 술은 단순히 마시고 즐기는 음료가 아니었습니다. 술은 오랫동안 종교적·의례적 요소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헤이안 시대 중기에 편찬된 법제서인 『엔기시키(延喜式)』에는 제사용 술을 빚기 위한 관청인 조주사(造酒司) 가 존재했으며, 천황과 귀족, 고위 관료가 소비하던 술과 하급 관리나 노동자에게 지급되던 술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 차례 덧빚은 궁중용 술인 미키/오미키(御酒) , 감주 계열의 레이슈(醴酒) , 그리고 하급자에게 지급되던 잡급주(雑給酒) 같은 술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 시기의 구분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체계적인 품질 등급이라기보다는, 신분과 의례적 위계에 따른 구분 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사찰은 상당히 거대한 세력이었다. 중세, 특히 무로마치 시대 무렵부터 술은 의례용에만 머무르지 않고 본격적인 상품으로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지역의 이름난 술, 즉 명주 의 개념도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또한 열처리인 히이레(火入れ) 기법, 술모 제조, 덧빚기 등 술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기술적 발전도 이루어졌습니다. 당시에는 넓은 토지와 인력, 자본을 갖춘 사찰에서 만든 술이 특히 유명했는데, 쇼랴쿠지(正暦寺), 곤고지(金剛寺) 등에서 빚은 술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에도 시대에 이르러서는 술에 대한 행정적 관리와 세금을 걷기 위한 규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막부는 술을 빚기 위한 별도의 면허 제도인 주조주(酒株) 를 도입했고, 술을 만들 수 있는 권리와 쌀 사용량, 생산량을 통제했습니다. 즉, 이 시기의 제도는 술의 맛이나 품질을 평가하기 위한 등급제라기보다, 쌀과 생산량을 관리하고 세금을 확보하기 위한 행정적 통제 장치 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민간 영역에서는 품질을 구분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습니다. 특히 간사이에서 에도로 들어오는 술인 쿠다리자케(下り酒) 는 고급 술로 평가되었고, 이를 다루는 상인들은 비공식적으로 술의 품질을 평가해 등급을 매기기도 했습니다. 이때 사용된 표현으로는 飛切, 最上, 極上, 上, 中, 次 등이 있었으며, 이러한 구분은 술의 가격과 판매 전략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메이지·다이쇼 시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근대 국가로 재편되었고, 정부는 술의 제조와 유통에 더욱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1896년에는 주조세법(酒造税法) 이 제정되며 술에 대한 과세 체계가 본격적으로 정비되었습니다. 또한 전국적으로 청주 품평회와 대회가 열리기 시작했고, 술의 품질에 따라 1등, 2등, 3등과 같은 상을 주는 문화도 형성되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술의 품질 평가는 점차 경험적·상업적 평가를 넘어, 전문적인 관능평가와 기술 평가의 영역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당시 양조 산업은 국가의 세수 확보에 매우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부족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엄격한 관리가 이루어졌고, 쌀 생산과 사용에 대한 통제도 매우 강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43년에는 최초의 본격적인 주류별 급별 제도가 등장합니다. 이때 일본주는 1급에서 4급까지 등급이 나뉘었지만, 이는 순수하게 술의 맛이나 품질을 위한 등급이라기보다는 전시 체제 속에서 주세를 확보하고 시장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 이 강했습니다. 이후 전후 일본은 쌀 부족과 시장 혼란 속에서 일본주 시장을 재정비해야 했고, 동시에 주세 확보와 품질 개선도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식적인 급별제가 정착하게 됩니다. 일본주조조합중앙회의 정리에 따르면, 1962년에는 주류가 10종으로 분류되었고, 청주는 특급·1급·2급 체계로 정리되었습니다. 특급 : 가장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상위 심사 등급 1급 : 중간 상위 등급 2급 : 하위 등급 또는 심사를 받지 않은 술이 포함되는 등급 급별 인정은 관능검사, 즉 심사원이 술의 색, 향, 맛 등을 평가하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높은 등급일수록 더 높은 주세가 부과되는 구조였습니다. 당시 소비자들은 정미보합이나 제조법에 대한 자세한 정보보다, 라벨에 적힌 등급을 보고 “특급이 가장 좋은 술이고, 1급은 그다음으로 좋은 술”이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급별제는 단순한 세금 제도를 넘어, 소비자에게는 일종의 구매 기준으로 기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등급 시스템은 점차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가격 자유화가 진행되고 일본주의 전반적인 품질이 높아지면서, 준마이주와 긴조주, 다이긴조주처럼 양조장별로 개성이 강하고 품질이 높은 술들이 등장했습니다. 기존의 특급·1급·2급 체계만으로는 이러한 다양한 고급 술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게다가 고품질의 술이 절세를 위해 일부러 등급 심사를 받지 않고 2급주 로 판매되는 사례도 나타났습니다. 높은 등급을 받으면 세율이 올라가기 때문에, 양조장 입장에서는 굳이 심사를 받아 높은 등급으로 판매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품질은 뛰어나지만 등급은 낮게 표시되는 술이 등장하면서, 급별제는 소비자에게 정확한 품질 정보를 제공하는 제도로서의 기능을 점차 잃어갔습니다. 또한 소비자 심리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부 소비자는 가장 좋은 술로 인식되는 특급주를 선택했고, 또 다른 소비자는 가격이 저렴한 2급주를 선택했습니다. 그 사이에 있는 1급주는 상대적으로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급별제는 제도적 혼란뿐 아니라 시대적 흐름에도 맞지 않는 체계가 되어 갔습니다. 결국 1992년, 일본주의 공식 급별제는 완전히 폐지됩니다. 이후 현대 일본주 시장에서는 과거의 특급·1급·2급 같은 수직적 등급 대신, 원료와 제법, 정미보합을 중심으로 한 특정명칭주 표시체계 가 보편화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접하는 준마이, 혼조조, 긴조, 다이긴조, 준마이긴조, 준마이다이긴조 같은 분류가 바로 이 체계에 속합니다. 과거의 유산 현대에 들어 사케를 접하는 소비자의 취향은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제품 역시 이에 맞춰 원료, 제법, 정미보합뿐 아니라 계절성, 저장 방식, 효모, 산지, 빈티지 개념, 양조장 자체 등급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케 라벨에는 단순한 품질 등급을 넘어, 술의 개성과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여러 마케팅 용어가 함께 사용됩니다. 그중에는 과거 일본주 등급체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표현도 있습니다. 바로 特撰(도쿠센), 上撰(죠센/조센), 佳撰(카센) 입니다. 이 세 가지 표현은 한국에서 사케를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낯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내용을 바탕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 표현들은 과거의 특급·1급·2급 체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대응됩니다. 월계관의 공식 설명에서도 이러한 표현은 특정명칭주 표시체계가 등장하기 전의 과거 등급체계를 자사 제품에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의 특선·죠센·카센은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 등급이 아니라, 양조장이 자사 제품군 안에서 사용하는 내부적인 상품 등급 또는 브랜드 랭크 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표현이 붙은 제품들은 해외 직구나 일본 여행 중 사케를 구매하는 한국 소비자에게 큰 구매 욕구를 자극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 표현은 대부분 보통주 에 해당하는 제품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보통주라고 하면 고급 사케라는 인상을 주기 어렵고, 한국 소비자 역시 준마이긴조나 다이긴조 같은 특정명칭주에 더 익숙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급별제가 사라진 지금에도 왜 양조업계는 특선, 죠센, 카센 같은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 것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이 표현들이 과거 등급제가 수행하던 소비자 선택 기준 의 기능을 대체하기 때문입니다. 1992년에 발행된 일본양조협회지에서는 과거 일본주의 급별제도가 단순한 세금 제도만이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는 “특급·1급·2급 중 무엇을 사면 되는가”를 알려주는 구매 기준으로 기능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급별제도 폐지 이후에는 소비자가 가격과 품질을 직접 비교해야 하므로, 표시제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래전부터 술을 대량 생산해 온 대형 메이커 양조장들은 특선·죠센·카센 같은 표현을 통해, 자사 제품 안에서의 품질과 가격대를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현대에도 일본 내 보통주 시장의 규모가 여전히 크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모던한 고품질 사케와 특정명칭주가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보통주가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일본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청주 제조수량은 총 285,636kL이며, 그중 특정명칭주는 130,535kL, 일반주는 155,100kL입니다. 비율로 보면 일반주가 약 54.3%, 특정명칭주가 약 45.7%로, 일반주가 여전히 과반을 차지합니다. 따라서 특선·죠센·카센은 비록 과거 등급제의 유산이지만, 오늘날에도 적어도 보통주 카테고리 안에서는 제품의 가격대와 포지션을 구분하는 용어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일본주의 등급체계는 고대의 의례적 위계에서 출발해, 중세의 명주와 제법에 대한 평가, 에도 시대의 시장 등급, 근대의 품평회와 세무 행정, 전후의 공식 급별제를 거쳐 발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1992년 공식 급별제가 폐지된 이후에는 특정명칭주 표시체계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등급제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흔적은 오늘날에도 特撰, 上撰, 佳撰 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으며, 특히 보통주와 대중주 시장에서 여전히 소비자에게 가격대와 품질 포지션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국세청, 「清酒の製法品質表示基準(국세청 작성 ‘酒のしおり’ 중)」 국세청, 『「日本の伝統的なこうじ菌を使った酒造り」調査報告』 국세청 과세부 감정기획관, 『清酒の製造状況等について 令和6酒造年度分』 일본주조조합중앙회, 「日本酒の分類」 독립행정법인 酒類総合研究所, 「鑑評会」 正暦寺, 「清酒発祥の地」 齋藤富男, 「級別制度廃止後の清酒の品質設計」, 『日本醸造協会誌』87巻 2号, 1992, pp.86–89.